트랜센던스(Transcendence, 2014) 리뷰

Posted by fakesherlock
2014. 5. 17. 17:52 Movie


티켓을 끊고 상영관에 들어가기 전,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물론, '럼 다이어리''캐리비안 해적'의 시리즈로 특유의 유머를 전하는
배우 조니 뎁 때문에 이 영화를 기다려 왔지만 모건 프리건과 레베카 홀이라니
약간 오버 캐스팅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는 중에 극중 '맥스'와 '뷰캐넌' 요원을 보고는 경악했습니다. 캐스팅 잔치더군요 ^^)

하지만 119분의 런닝타임 동안 제 의문은 공허한 기우였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그 어떤 배우도, 이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를 가로막기에는 역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트랜센던스 (2014)

Transcendence 
 7.8
감독
월리 피스터
출연
조니 뎁모건 프리먼레베카 홀폴 베타니킬리언 머피
정보
SF, 액션 | 미국 | 119 분 | 2014-05-14
글쓴이 평점  

인간의 두뇌가 업로드된 슈퍼컴 ‘트랜센던스’
당신의 그 어떤 상상도 이 영화를 초월하지 못한다!

인류가 수억 년에 걸쳐 이룬 지적능력을 초월하고 자각능력까지 가진 슈퍼컴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목전에 둔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은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멸망이라 주장하는 반(反) 과학단체 ‘RIFT’의 공격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 연인 ‘에블린’(레베카 홀)은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 시켜 그를 살리는데 성공하지만, 또 다른 힘을 얻은 그는 온라인에 접속해 자신의 영역을 전 세계로 넓혀가기 시작하는데…


 사실 이 영화는 많은 '구멍'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 사실을 사뿐히 무시하는 비약, 많은 주요 캐릭터들로 인한 주의 분산 그리고 어느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는 커녕 다가가기도 힘들 법한 첨단 테크놀로지라는 소재는 충분히 영화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어찌보면 정형화 되있지 않은, 투박한 메세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마치 정제되어 있지않은 원석 같은 느낌으로 말이죠. 사실 영화는 상영되는 동안 하나의 메세지를 던지는 듯 하면서도 순간 순간 또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여러 명의 캐릭터는 이런 관점들을 하나 씩 투영하고 있는데, 이를 보는 관객들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죠.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영화의 계획적인 의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그 투박한 메시지가, 정제되지 않은 원석인 질문 그 자체가 바로 영화가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메세지이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트랜센던스의 큰 축은 휴머니즘으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와 첨단 기술로 대표되는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과학 테러 단체인 R.I.F.T(Revolutionary Independence From Technology)와 테크놀로지 그 자체가 된 '윌'(조니 뎁Johnny Depp), 0과 1로는 인간의 영혼을 담을 수 없다고 고민하는 '맥스'(폴 베타니Paul Bettany)와 비록 저장된 데이터일 뿐이라도 자신과 공유하는 모든 추억을 담은 양자 컴퓨터가 사람과 동일할 것이라 믿는 '에블린'(레베카 홀Rebecca Hall)의 대립각 역시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갈등의 축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갈등 속에 다양한 모순을 보여줍니다. 가령 비논리의 결정체인 인간의 뇌를 논리적으로 구현하려는 'PINN'(Physically Independent Neural Network) 시스템이나 테크놀로지로 부터의 탈출을 외치면서 온갖 디지털 디바이스와 방사능 총알을 이용해 과학자들을 살해하는 'R.I.F.T'가 바로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모순들은 캐릭터의 입체적 변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데, R.I.F.T에 납치되기 전, 후의 '맥스'나 '윌'을 바이러스에 감염시키기 전과 후의 '에블린'에서도 어느정도의 모순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모순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자신을 해치기위해서 온 '에블린'을 받아들이는 '윌'의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이전에 보여준 금융, 의학, 과학 기술을 모두 아우르는 엄청난 논리적 계산의 결정체인 '윌'이 갑작스럽게 다시 나타나 자신을 업로드 시켜달라는 '에블린'을 받아들인다는 건 아무리 봐도 결과를 모두 예측하고서도 하는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가장 논리적인 객체가 가장 비논리적인 선택을, 자신의 파멸을 부르는 선택을 하게되는 꼴인거죠. 
 
 영화는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테크놀로지의 잠재적 위험성을, 휴머니즘으로의 귀환을 외치는 듯 합니다. 하지만 '맥스'가 발견한 해바라기 아래의 물 속에는 아직도 나노로봇으로 대표되는 '윌'과 '에블린'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나노로봇은 수 백년, 수 만년 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들을 증식시키면서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요. 아이러니 하게도, 모든 전파가 닿지 않는 안 마당의 구리 철조망 아래에, 밝게 빛나는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 아래에서 나노로봇의 형태로 말이죠.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그 메세지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메세지가 세련되게 정제되어 있거나 확실한 입장을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연기나 전개, 액션이 훌륭한 것도 아니지요. 애매모호한 영화의 메세지는 그 자체로는 빛이 나지 않는 원석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 명의 캐릭터가 다양한 메세지를 투영하고 있는 것 처럼, 우리들 역시 각각의 관점과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영화 속의 여러 원석들 중에서 자신만의 원석을 고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스스로의 보석을 만들어 가겠죠. 아마도 이것이, 영화 '트랜센던스'가 관객들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영화의 원제 'Transcendence'는 '초월'을 의미합니다.
*테러 단체인 R.I.F.T(Revolutionary Independence From Technology)는 19세기 초 영국에서 있었던 사회 운동 러다이트(Luddite)운동을 연상시키는 요소입니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배우들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편입니다. 심지어 주연인 조니 뎁 역시 초반 부를 제외하고는 극 중의 스크린으로만 존재 하기 때문에 존재감이 미약합니다. 모건 프리먼이나 킬리언 머피 같은 거물급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오지만 사실 큰 역할이랄 것이 없고 솔직하게 왜 저 캐릭터가 저 배우여야만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메세지에 상당한 비중을 뒀기 때문에 영화 자체는 상당히 지루한 편입니다. 그렇다할 액션도 감정 고조도 그 흔한 클라이맥스 조차 미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만 끝없이 생각하고 상상하게 만들죠.
*영화를 보면서 '신념'에 관해 생각하게 됬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류의 발전 이라는 갈등 속에서 각각의 '신념'에 따라 자신들만의 '선택'을 하게되는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서 결국 인생의 모든 문제는 본인의 선택에 의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핏 '종교'에 대한 논의 역시 이 영화를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어떤 목표를 달성하든 종래엔 공험함과 마주치게 될껍니다. 결국 인간은 그런 공허함을 피하기 위해 인간으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의 세계인 '신'과 만나기를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선택'의 문제 겠지요.
*"인터넷은 세상을 좁게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인터넷이 없는 지금이 더 좁게 느껴진다." - 극 중 '맥스'의 독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