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영화로 부터의 탈피, 영화 역린(2014, 逆鱗, The Fatal Encounter) 리뷰

Posted by fakesherlock
2014. 5. 21. 12:22 Movie



사실 별로 볼 마음이 없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TV에서 광고 노출이 많았던지
호위무사들이 기와지붕에 엎드려서 자객들을 맞는 장면이
머리 속에 각인 되버려서 결국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영화를 다 본 지금의 생각은,
단언컨데 이 영화는 10,000원이 절대 아깝지 않은 영화라는 겁니다.


 영화는 시간을 역행하면서 진행됩니다.
첫 장면에서는 피바다로 흥건한 자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는데
장대처럼 내리는 빗속을 뚫고 돌진하는 한 자객에게 영상을 집중시키면서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유발시킵니다. 과연 저 자는 누구인가? 라는 궁금증을요.

 그러면서 과거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검소하고 절제되있으며 속이 꽉 찬 성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현빈의 연기를 통해
'정조'라는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등골의 척추 뼈를 다 보여주면서 푸쉬 업을 하는 그 단백질 덩어리는.... 남자가 봐도 멋있습니다.)

그러면서 정순왕후(배우 한지민)와 정조 사이의 긴장감을 던져주면서
영화는 갈등의 구도 축을 잡아갑니다.

 그런 주된 갈등의 축을 중심으로 가지를 쳐나가면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전문 살수이지만 강월혜(*223놈이의 다른 이름)에게 연정을 품고 이 때문에 '광백'(배우 조재현)에게
이용당하는 을수(*220놈이의 다른 이름), 요직 암살의 목적을 띄고 타의에 의해 내시가 된 갑수(*77놈이의 다른이름)
역시 내부 첩자의 목적으로 궁에 들어가게된 월혜와 이 모든 이들을 만들어낸 광백까지
이 네 명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사실상 영화의 중심 이야기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속에서는 비중있게 다루어집니다. 물론 거기에 따른 의미 또한 도출할 수 있겠지요.

(**분명 이 부분은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단순히 정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면 기존의 사극 영화들과는
다른 느낌을 줄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들에게 비중을 더 둠으로써 기존의 정조에게 집중되어있던 시선 집중이 분산되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정유역변'의 24시간을 서술하는 영화는 이제 하나 둘 씩 퍼즐 조각을 맞춰가면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면서 모든 인물들의 갈등이 하나로 모이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새벽녘 영화의 

첫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그 중 정조가 '애깃살'을 가지고 자객들을 하나 둘 쓰러뜨리는 

장면은 이전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느꼈던 화살만의 짜릿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면서 '갑수'와 '을수'의 교차를 통해 엇갈린 운명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마음속에 저릿저릿함을 각인시켜줍니다.(연기가 참 몰입 잘 되더군요.) 그렇게 갈등의 최고조 이후 왕의 의복에 적힌 '월혜'의 필서를 

통해 사건이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이 부분에서 월혜가 정조에게 남기는 말이 곧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천한 출신으로 권력에 의해서, 타인의 목적을 위해 살아온 자신들에게도 인간다움이 있으며 이것을 통해 모든 백성들을 

굽어 살펴 모든 이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월혜의 간절한 소망은 아마도 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강력한 장치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끝 부분에는 참으로 통쾌한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정조가 '할마마마'라 부르는 정순왕후가 자신에 했듯이 

똑같이 손을 잡고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하나 하나 짚으면서 정순왕후의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권력의 벽을 무참히 무너뜨리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에서 만큼은 영화를 보는 내내 조여왔던 긴장감과 안타까움이 모두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한지민 씨가 악독한 연기를 잘 했다는 얘기도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정조가 말을 달리면서 나래이션이 나옵니다. 

(정재영)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빈) 변한다, 반드시 변한다

이전에 정조가 상책을 통해 기성 관료들의 나태함을 꾸짖는 장면에서 나온 예기 중용의 23장 내용입니다.
결국 즉위 1년만에 왕으로서는 최대의 위기라 할 수 있는 역모를 경험한 정조가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갈지 주목하게 만들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어찌보면 시덥잖은 결말이지요.

 리뷰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개봉 이전의 입소문에 비해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아보입니다.
평점도 7점대에 평론가들의 거센 질타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지요. 하지만 저에게만은 이런 비평과 비난들이
그렇게 와닿지 않습니다. 아마 영화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겁니다.

 배우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제작 부터 멀티 캐스팅으로 주목받은 영화입니다. 현빈은 말할 것도 없고
정재영이나 조재현, 박성웅 그리고 조정석 같은 배우들은 절대 연기로서 실망시킬 배우들이 아니고 정은채 같은
신인에 가까운 배우들 역시 영화 곳곳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이런 멀티 캐스팅을 보고 영화 속의 시선 분산
논하기엔 얼핏 당연해보이지만 사실 정반대가 맞다라고 생각합니다. 시선의 분산이라고 얘기하기엔 이야기의 중심
'정조'에게 있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주제는 절대 '정조'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사용되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위에서도 언급 했듯이
갑수와 을수 그리고 월혜에 대한 이야기이지 결코 기존 사극이 항상 보여주는
왕에 대한 가쉽과 사필귀정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더불어 이 영화에는 몇몇 칭찬할 점이 보이는데, 가령 사도세자 갇힌 뒤주의 봉인을 풀 때 그 속에 있던 사도세자의 모습에서
의복에 배설물이 묻어있는 섬세함이라던가 시간적 순서를 통해 서술하는 기법등은 영화의 흥미를 더해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사극'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상당히 고무적인 느낌입니다. 기존에 제가 '사극'이라 칭하는 것들에서 느끼는 고리타분함과 정체성을 깨고 새로운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으레 영화가 그렇듯이 완벽하지는 못했나 봅니다. 멀티 캐스팅이라는 양날의 검을 가지고 이리저리 휘두르다
이야기의 중심이 흐려지고 영화의 의도가 불분명해지는 결과를 낳았으니깐 말이죠.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 영화는 그저 애매모호한 정조의 이야기였습니까 아니면 인간다움을 느끼기 위한 사람의 처절한 이야기였습니까?

*역린《韓非子(한비자)》〈세난편(說難篇)〉에 그 출처가 있는데, 전문이 아래와 같습니다.

 용(龍)이란 짐승은 잘 친하기만 하면 올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 아래에 붙어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逆鱗)을 사람이 건드리기만 하면 반드시 사람을 죽이고 만다. 임금도 또한 역린이 있다. 말하는 사람이 임금의 역린만 건드리지 않을 수 있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고로 역린을 해석을 할 때에는 '임금(상관)의 노여움' 혹은 순리에 거역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영화 역린은 1777년 7월 28일날 있었던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정조가 홍지해라는 인물을 귀양보내면서
시작되는데 이에 앙심을 품은 아들 홍상범등이 정조인 이산 대신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전군 이찬은 왕으로 추대하려고 한 사건입니다.
7월 28일 11시경 경희궁 존현각에 자객이 침입한 흔적이 있었고 금위대장 홍국영에 의해 대궐을 수색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는데,
정조가 '구선복'이라는 인물을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8월 9일 비로소 범인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구장군'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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